“치아는 치과의사에게.”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가끔은 부정될 때가 있다. 치의학 전문 지식과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가 치아를 진료(?)하고, 오히려 치아에 해를 입히는 일이다. 피해보상은커녕 지불한 돈을 환불하는 것조차 거부해 감옥에 가기도 한다.
다름 아닌 의료기술 선진국으로 꼽힌다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미국이 의료기술 자체로는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일반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것을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대형 약국에 즐비하게 진열된 각종 진통제나 일반의약품을 보면 우리나라의 좋은 보건 제도의 위력을 실감한다.
지난 9월 바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템파 베이에 살고 있는 에멀리 마르티네즈(35)라는 여성은 무면허 치과 진료소를 운영하며 가짜 비니어 시술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언론에 공개된 마르티네즈의 수법은 이렇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 비니어를 부착한 것에 대해 드라마틱한 시술 전후 사진을 홍보했다. 그러면서 저렴한 가격에 시술을 해주겠다고 환자들을 꼬드겼다.
하지만 정작 마르티네즈는 치과의사 면허는 물론 없고, 정식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바이스는 보도했다. 게다가 마르티네즈가 시술에서 사용한 접착제는 인체에 사용할 수 있는 치과용품이 아니라 철물점에서 판매하는 ‘크레이지 글루’라는 제품으로 우리로 치면 본드다.
월마트 홈페이지에는 이 크레이지 글루에 대해 플라스틱, 세라믹, 나무, 고무, 철, 가죽 등을 부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바이스는 “(환자들의) 구강 손상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치과 진료가 정말 비싸다. 비니어의 경우에는 치아 하나에 900달러에서 2500달러까지 한다. 이 때문에 무자격자의 광고에 현혹되는 피해자가 생겨난 것이다. 주로 한 개 치아를 시술할 돈에 여러 개를 해준다던가, 다른 시술을 같이 해준다는 식으로 현혹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마르티네스는 비니어 하나에 300달러를 받겠다고 광고했다고 WFLA 방송은 전했다.

이 중에서 두 명의 피해자는 심각한 감염과 치아 손상으로 고통받았다. 현지 치과의사 크리스토퍼 불네스는 이 중 한 환자는 자신의 치아에 사용된 접착제가 팽창하고 발열할 수 있으며 신경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점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마르티네즈는 게다가 이번이 초범도 아니다. 지난 3월 그는 인근 힐스버러 카운티에서 비슷한 혐의로 체포된 적 있는데 당시에는 석방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수법으로 환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환불이나 배상을 거부했다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한 환자는 1600달러를 낸 뒤 비니어 시술을 그에게 받았는데 계속 비니어가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의 환불 요구를 거부했다.
지난 10월에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가짜 치과의원을 운영한 남매가 기소됐다. 최근 마이애미 헤럴드에 따르면 카를로스 렌던과 요를래디 렌던 남매는 최소 2020년부터 올랜도에서 무면호 치과의원을 운영해 비니어 시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카를로스는 치과의사 행세를 하고, 요를래디는 조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카를로스 렌던은 치과의사가 아니라 미용사 면허 소지자였다. 한 환자는 이들에게 4000달러를 지불했지만 이후 치과의사 면허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신고했다고 한다.
다른 피해자는 이들 일당에게 비니어 20개 시술을 받았지만 입 크기에 비해 너무 컸고, 그래서 울고 싶었다고 경찰 수사관들에게 털어놓았다.
이들의 범행으로 환자들의 피해는 컸다. 한 환자는 이들에게 비니어 시술을 받은 다음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치아가 부러졌다. 그리고는 잇몸이 부어올랐으며 결국 치과의원에 가서 비니어를 제거했다.
이들의 시술로 인해 생긴 감염 때문에 항생제를 8일 동안 복용하고, 치료를 추가로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일당은 체포 직전인 9월 중순까지 영업장을 광고했다고 한다. 마이애미 헤럴드에 지목된 이들 일당의 영업장은 아직도 홈페이지가 버젓이 살아 있다.

인터넷은 흔히 이들 가짜 치과의사의 광고판으로도 쓰이지만, 이들이 치과 의술을 귀동냥할 수 있는 창구로도 쓰인다. 가디언에 따르면, 체코 중부도시 하블리치코프 브로드에서는 22세 남성이 치과의사 행세를 하면서 발치, 신경치료, 마취 등을 진행했다. 온라인에서 얻은 정보로 무자격 시술을 했다고 한다.
간호사 역할의 50세 여성, 사업장 주인 겸 보철 장구 제작자 44세 남성 등 3인이 한 패다. 이들은 지금까지 범죄 이력이 없었고, 유죄를 인정한 뒤 가석방됐다고 신문는 전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불법 수익은 400만코루나(약 2억7000만원)라고 한다.
미국치과의사협회는 그동안 무자격자의 비니어 시술의 위험성을 강조해왔다. 협회 대변인인 치과의사 에이다 쿠퍼는 AP통신에 “치과의사가 하지 않는 시술은 퀄리티 조절에 실패한다”면서 “우리(치과의사)들은 수년간 교육과 수련은 물론이고 진료를 보기 전에 다양한 규제를 통해 면허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치과의사협회와 각 주 보건 당국 등에서는 치과의사의 면허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에서 치과의사의 면허를 엄격하게 발급 및 관리해 가짜 치과 시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Writer. 이현택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에서 18년간 근무한 전직 신문기자. 지금은 프리랜서 기고가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구상하고 있다. 언론 외에도 JTBC 방송 홍보마케팅팀과 미국 에델만글로벌어드바이저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 험프리 펠로우십과 구글 아시아태평양 뉴스룸 리더십 펠로우 등을 거쳤다. 취미 겸 특기는 참고서 집필로, 지금까지 <언론고시 하우 투 패스>, <고급 언론고시 실전연습> 시리즈, <중앙일보-JTBC 입사 공식 가이드북> 등을 공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