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왕관을 내려놓고 ‘아묻따밴드’로 선 조영수… “다음 목표는 빌보드 1위”

2026.05.29

750곡. SG워너비, 씨야, 다비치의 발라드부터 임영웅의 트로트까지, 지난 30년간 조영수는 시대의 감성을 관통하는 멜로디를 써왔다. 대한민국에서 그와 작업하지 않은 가수를 손에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다. 그런 그가 최근 건반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홍경민, 차태현, 김준현 등 절친한 동료들과 결성한 ‘아묻따밴드’의 멤버로서 말이다.

웃고 있는 남성의 초상. 검은 둥근 안경을 쓰고 있으며, 흰색 셔츠를 입고 있다.
아묻따밴드의 멤버로 데뷔한 작곡가 조영수는 어린시절 처음 음악을 할 때의 설렘을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작곡가 아닌 ‘아묻따밴드’ 조영수

아묻따밴드는 홍경민(리더·베이스), 조영수(키보드), 차태현(객원 보컬), 전인혁(기타), 김준현(드럼), 조정민(피아노)으로 구성된 밴드다. KBS 2TV ‘불후의 명곡’ 신년 기획 2026 배우 특집에서 결성과 동시에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 2월 디지털 싱글 앨범 ‘알고 있잖아’를 발매하고 공식 데뷔했다.

작곡가가 아닌 밴드 멤버로 돌아온 조영수의 얼굴엔 신인 같은 생경함과 설렘이 가득했다.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시작했지만, 30년 가까이 직업으로 대하다 보니 어느덧 즐거움이 사라지고 의무감만 남은 상태에서 밴드를 시작하며 처음 음악을 할 때 설렘을 느꼈어요.”

여섯 명의 음악가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상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는 기타를 들고 있는 멤버, 키보드를 연주하는 멤버, 마이크를 들고 있는 멤버가 있으며, 하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는 전기 기타를 들고 있는 멤버, 드럼을 치고 있는 멤버, 피아노를 연주하는 멤버가 포함되어 있다.
아묻따밴드 멤버들. 사진=넥스타엔터테인먼트

좋아하는 일이 일상이 된 순간 찾아온 공허함을 ‘아묻따 밴드’라는 새로운 창구를 통해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합류 계기는 우연이었다. 친구인 홍경민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도 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가수의 무대를 객석이나 백스테이지에서 봐왔던 그가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이래서 가수를 하는구나, 이런 쾌감 때문에 음악을 한다는 걸 처음 느껴봤어요. 아이돌 가수들이 공연이 끝나고 느낀다는 그 허한 기분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빨리 다시 공연하고 싶어요.”

데뷔곡 ‘알고 있잖아’ 작업도 기존과 달랐다. 멜로디가 가는 대로 썼고, 작사는 다섯 멤버가 단체 채팅방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완성했다.

“단톡방에 제가 가사 두 줄을 써서 올리면, 그 다음 줄을 선착순으로 멤버들이 써 내려가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동안 주로 작사가 한 분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다섯 명의 색깔과 어휘력이 다양하게 담겨서 정말 새로웠어요.”

완벽주의 디렉터로 유명했던 그는 이번 밴드 작업을 통해 멤버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소리를 채워가는 밴드 음악의 본질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웃고 있는 남성의 모습. 둥글고 검은 안경을 쓰고 있으며, 흰색 셔츠를 입고 있다. 배경은 사무실 환경.
그의 다음 목표는 ‘빌보드 차트 1위 작곡가’로, 해외를 타깃으로 한 곡이 올해 나올 예정이다.

30년 간 750곡… 비결은 준비된 벼락치기

조영수는 이기찬, 이승철, 다비치, SG워너비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백 팀의 데뷔곡과 히트곡을 써왔다. 오랜 시간 꾸준히 히트곡을 낼 수 있었던 작곡 비하인드는 의외로 단순한 ‘마감 임박 벼락치기’였다.

“어릴 때부터 벼락치기 습관이 있었어요. 발라드 곡은 거의 5분 안에 써서 바로 보냈는데 그게 히트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기찬 씨의 ‘미인’도 마감 전날 밤에 써서 아침에 보냈고, 2007년 연간 1위 곡이 됐어요.”

비록 곡을 쓰는 물리적인 시간은 짧지만 그 바탕에는 수일간 이어지는 치열한 구상이 깔려 있다. 길을 걸으면서, 식사를 하면서, 운전 중에도 가수의 목소리와 음악적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렇게 머릿속에 쌓인 구상들이 마감 직전의 극한의 집중력을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방식이다.

수천 곡을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전의 썼던 멜로디를 복제하거나 타인의 작업물과 유사해질 위험이 있다. 조영수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곡이 완성되면 가장 먼저 동료 작곡가들에게 모니터링을 맡겨 필터링 과정을 거친다. ‘혹시라도 비슷한 멜로디가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새로 쓴다’는 그의 원칙이 30년 새로움의 밑바탕이 됐다.

찾아온 정체기, 그리고 자기관리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5~2016년경 아이돌 음악이 대세가 되면서 발라드 시장이 급격히 침체됐다. 주변 발라드 작곡가들도 하나둘 모습을 감췄다. 쉼 없이 몰두해온 탓에 그의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매일 밤샘 작업이 이어지며 체중이 급격히 늘었고, 당뇨, 고지혈증, 혈압 등 성인병이 뒤따랐다.

“음악을 오래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절하는 법을 익히고, 운동과 휴식 시간을 남겨두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헬스장을 찾는다. 특히 골프를 시작하며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홀로 작업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작곡가의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정서적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최근엔 오랫동안 신경 쓰이던 치아 문제도 해결했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거울과 화면 속에서 치아 마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웃을 때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하는 습관도 이때 생겼다. 고민 끝에 미니쉬 치료를 받은 후에는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최근 아묻따 밴드 멤버들에게서 “형, 요즘 되게 잘 웃는다”는 말을 처음 듣기도 했다.

한 남성이 'MINISH'라는 스티커를 들고 웃고 있는 모습
조영수는 오래 누적된 치아마모를 고민하다 미니쉬 치료를 받았다.

트로트부터 올림픽 음악까지… “내 가치를 증명해 준 음악”

시장 상황이 변하는 정체기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전공인 발라드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작곡을 이어갔다. 군가도 작곡하고, 트로트도 썼다. 이때 나온 곡이 홍진영의 메가 히트곡 ‘사랑의 배터리’다.

“새로운 장르에서 히트를 냈을 때 희열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사랑의 배터리’가 성공한 후 다른 음악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조금씩 성장한 것 같아요.”

2018년에는 대중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시상식 음악도 만들었다. 당시에는 대중음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올림픽 음악 작업 자체가 큰 영광이었지만 음악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메달리스트들이 울면서 시상대에 오를 때였어요. 메달리스트들의 기억 속에 제 음악이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작곡가로서 큰 보람이었습니다.”

또 한 번의 전환점은 택시 안에서 찾아왔다. 늦은 밤 퇴근길 택시 안에서 찾아왔다. 라디오에서는 병든 아내에게 못다 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한 노부부의 사연과 함께 신청곡인 SG워너비의 ‘내 사람’이 흘러나왔다.

“그때 소름이 돋으면서 ‘아, 내가 이래서 음악을 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제 음악으로 위로받고 사랑을 전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다시 음악을 지속할 힘을 얻었어요.”

최근에는 AI의 등장도 주시하고 있다. 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AI가 쓴 곡이 1등을 하는 것을 보며 기술적 완성도는 인정했다. 다만 새로운 감성을 만드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봤다.

“AI에게 조영수 스타일로 곡을 써달라고 하면 제가 써온 750곡을 다 분석하겠죠.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예요. 지금까지 안 했던 걸 하는 거죠.”

빌보드 1위를 꿈꾸는 여든 살의 밴드 멤버

그는 두 가지의 확실한 목표를 내걸었다. ‘아묻따 밴드’로서는 멤버들과 함께 여든 살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즐겁게 공연하는 것, 그리고 작곡가로서는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K-팝이 세계를 휩쓰는 지금, 제가 가장 좋아했던 팝과 R&B 감성으로 빌보드 1위 작곡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미 해외 작업이 진행 중이고 올해 안으로 첫 곡이 나올 예정이에요. 아묻따 밴드와 빌보드, 이 두 가지 도전이 제 남은 음악 인생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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