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 연자’ 홍준기 원장 에세이

동료 의사들 앞에서 내 진료와 경험을 소개하는 강연을 한 지도 3년쯤 됐다. 이제는 연단에 서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고 초보 티도 벗어났다. 처음엔 국내 동료들 앞에 섰고 지난해부터는 일본과 미국으로 날아가 현지 의사들에게 강연하고 실습도 지도한다. 강연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될 거라고는 개원할 땐 상상하지 못했다. 부족한 내 임상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강연 활동은 진료실 안팎의 나를 바꿔놓았다. 진료실 안에서의 변화는 ‘설명할 수 있는 진료’를 한다는 점이다. 혼자 진료할 때는 내 판단과 직관에 따라 진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동료 의사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 치료했는가”를 풀어내려면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머릿속에서 직관적으로 내리던 결정들을 학문적 근거와 함께 말로 정리해 두어야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료실에서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는 전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가 따라붙게 됐다.
진료실 밖에서의 변화는 ‘기록의 일상화’다. 로컬에서 임상을 시작해 박사 과정만 따로 밟은 나에게는 진료 전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 처음부터 익숙하진 않았다. 강연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임상 사진과 영상을 집요하게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찍어두면 설명할 때 좋겠다” 싶은 순간을 놓치면 강연에서 말로 때워야 하고 전달력도 떨어진다. 치료 전후의 구강 내 사진뿐만 아니라 술식의 중간 과정, 그리고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의 순간까지 생생하게 남겨두어야 비로소 아쉬움이 남지 않는 강의가 완성된다.
사실 이런 정리와 기록은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 시간에 환자를 한 명 더 진료하면 당장은 병원 경영에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이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자료를 정리해보니, 결과적으로 혜택은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지난 케이스들을 복기하다 보면 “그때 내가 왜 그 결정을 내렸을까” 새삼 곱씹게 되고 잘된 점뿐 아니라 다음에는 다르게 시도해 볼 만한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강연 준비를 위한 자료 정리가 거꾸로 내 진료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여주는 디딤돌이 된 셈이다.
배움은 강의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해외 강연을 다니면 현지 병원을 둘러볼 기회가 생긴다. 한국에서도 지인들 병원이라면 꽤 많이 둘러봐 왔지만 해외 병원은 결이 또 다르다. 새로운 발상에 감탄하기도 하고 환자를 대하는 그들의 방식에서 배울 점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귀국하자마자 내 병원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접할 수 없던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매너리즘을 깨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강연이 내 삶에 기분 좋은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만약 매일 똑같은 진료실 안에만 갇혀 있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값진 자산들이다. 오늘도 다음 강연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진료를 기록한다.











